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은 2016년 조나단 앤더슨의 주도로 현대 장인 기술의 탁월함, 예술적 가치, 그리고 혁신을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 로에베 재단에서 제정한 상으로, 올해 10회째를 맞이하였다. 총 133개국에서 4,6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기술적인 완성도와 창의성, 그리고 예술적 비전을 기준으로 최종 후보 30인이 선정되었다. 로에베는 이 상을 통해 현대 문화 속 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 혁신을 이뤄낼 재능과 비전을 지닌 현대 공예가들을 발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5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에 선정된 30점의 후보작
18개 국가 및 지역을 대표하는 최종 후보작들은 도자기, 목공예, 섬유, 가구, 종이, 유리, 금속, 옻칠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흙, 톱밥, 낙엽 등의 독창적인 재료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로 전통적인 공예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새롭게 변형하거나 자신만의 기술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작가 이정인, 류연희, 신선이 3인도 최종 30인 후보에 올라 공예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훌륭한 30인의 후보작 중에서도 최종 선정작 1점과 한국인 3인의 작품, 그리고 색다른 재료와 기술로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2025년 수상의 영예는 테라코타 작품 <Realm of Living Things 19>, 2004 으로, 일본 작가 쿠니마사 아오키(Kunimasa Aoki)에게 돌아갔다. 이 작품은 힘이 가해졌을 때 소재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방식을 탐구하여 완성한 왜곡된 형태의 테라코타 작품이다.
아오키는 자연 세계 속에서 시간이 층층이 쌓이는 방식에 매료되어, 작은 힘들이 모여 더 견고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착한다. 그는 아주 많은 가느다란 점토 실들을 겹겹이 쌓고, 모양을 잡고, 압축하는 혁신적인 기법을 통해 소재의 한계를 이겨낸다.
그의 작품은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보이지만 생명력이 느껴지는 형태와 표면을 지니며, 다차원적인 시각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변형의 여정으로 초대한다.
이정인 작가는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며 목공 기술을 연마했고, 가구 디자인과 조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섬세한 수작업으로 직물과 전통 한지를 다루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주목 받았다.
이번에 출품한 이정인 작가의 <A Soft Landscape>은 100장이 넘는 한지를 켜켜이 쌓아 만든 의자로 구름처럼 가벼운 형상을 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단단하게 제작되었다.
소비와 폐기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방식으로 어떠한 자재도 낭비되지 않도록 계획되었고, 작가는 한지 100장을 직관과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형태를 잡아가며, 구름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류연희는 한국 전통 바구니 제작 기법을 재해석하여 구리를 정교하게 이용하여 바구니 <BAGUNI> 작품을 선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소 거칠어 보이는 청동 녹(patina)은 시간이 지나며 불균일한 따뜻함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곡선, 자유로운 형태, 유기적인 질감은 금속 고유의 차가운 본질을 초월하게 하며, 사용된 물건일수록 더 깊은 영혼을 담는다는 작가의 신념을 강조한다.
신선이 작가의 <Embracing Lotus> 는 한국 고유의 금속 상감 기법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철제 접시 세트로, 끌로 새긴 철제 표면에 은사를 상감해 연꽃 무늬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주방용품과 신성한 연꽃을 결합하여, 각 그릇에서 생명이 움트는 듯한 형상을 보여준다. 조각된 둥근 꽃잎 무늬는 평화와 행복의 상징으로, 연꽃의 전통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은상감 기법 위에 옻칠을 더해 은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산화를 방지한다.
그 외에도 폐기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방식을 실천하며, 버려진 재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작품 또한 주목할 만하다.
hors-studio x Cecile Feilchenfeldt 의 작품은 잊혀졌던 해상 비단 직조 전통을 되살려 어폐류의 분비선에서 생성되는 섬유인 비수스(byssus)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염색과 직조 과정을 거친 작품은 빛을 반사하고 흡수하는 특성을 지니게 되며,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자원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작가는 산업 및 공예 생산에서 발생하는 폐자재와 자투리 소재를 재활용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디킨스 오티에노(Dickens Otieno)는 어머니의 재봉사 일을 통해 초기 영감을 얻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2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케냐 대표로 참여했으며, 잘게 분쇄된 알루미늄을 철망으로 만든 아연 도금 베틀에 짜 넣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
손끝의 감각, 직관,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최종 30인의 작품은 전통 공예를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장인들이 각기 다른 문화적, 기술적 배경 속에서 쌓아온 경험은 오랜 기술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며, 공예가 지닌 표현의 확장성을 유쾌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올해 선정된 작품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감정, 사회 구조에 대한 동시대적 고민을 공예라는 물성과 형식 안에 담아내며, 과거와 현재, 전통과 실험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다.
이번 공모를 통 공예가 더 이상 고립된 장인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디자인·예술·기술 등 다양한 분야와 긴밀히 연결되며 다학제적 대화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장인 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재조명하며, 공예를 미래를 위한 창조적 상상력의 실천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 상이 매년 보여주는 놀라운 다양성과 깊이는, 우리가 왜 여전히 손으로 만든 것에 감동하고, 그 안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 참고 >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 공식 홈페이지
정보 DB > 문화예술 정보
